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소년 윤강민은 부모님과 함께 청주야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본 후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청년 윤강민은 인하대학교 최강 투수이자 NC 다이노스의 미래가 될 야구선수가 되었습니다. 184cm 86kg의 건장한 체격과 100m 밖에서도 눈에 띄는 잘생긴 외모, 거기에 타자를 압도하는 140km 중반의 강속구를 겸비한 아기공룡 윤강민 선수와의 진솔한 대화를 들어볼 수 있는 ‘信人을 꿈꾸는 新人들 5편’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Q. 어떻게 처음 야구를 시작했나요?
윤강민(이하 윤): 충청도 청주가 제 고향이에요. 초등학생 때 부모님과 청주구장에서 한화 이글스의 경기를 보곤 했거든요. 프로야구 관람을 하면서 야구에 관심이 생겼는데 볼수록 직접 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한테 야구하겠다고 했어요.
Q. 하지만 쉽게 허락해주시진 않았을 것 같아요.
윤: 정말 심각하게 반대하셨어요. 4학년 때부터 야구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계속 반대하셨어요. 5학년이 되어서도 제 고집을 꺾지 않고 야구 시켜달라고 졸랐어요. 그 모습을 보고 삼촌께서 야구 한번 시켜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주셔서 부모님 마음이 움직이신 것 같아요. 그래서 바로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고,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어요.
Q. 초, 중, 고교 시절의 야구선수 윤강민은 어떤 선수였나요?
윤: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선수였어요. 처음에는 타자로 시작했는데 친구들하고 다 고만고만한 실력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투수를 하기 시작했어요. 시작은 오버핸드 투수였는데 다리가 제어가 잘 안돼서 팔을 밑으로 조금씩 내리면서 자세를 바꾸다 보니 지금의 사이드암 투구폼이 완성됐어요. 고교 올라와서 본격적으로 사이드암 투수가 됐다고 할 수 있죠.
Q. 그렇게 3년간 사이드암 윤강민을 다져왔는데, 고3때 야구를 관두려고 했다고 하던데요.
윤: 북일고 졸업하고 야구 그만두고 군대 가려고 했었어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컸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 당시 전대영 감독님이 프로에 갈 수 있다고, 더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시면서 대학 진학을 추천해주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인하대로 진학하게 됐고요. 그 때 말고는 야구를 관두려고 한 적은 없었어요.
Q. 결과적으로는 현재 특별지명을 받고 NC 다이노스에 입단한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잖아요. 대학 진학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나요?
윤: 일단 체격적으로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까지는 많이 왜소했거든요. 훈련을 통해 살도 찌우면서 몸이 다져지니까 볼에 힘이 더 좋아졌고요. 아무래도 고등학생 때보다는 선수다운 모습이 더 다져진 것 같아요.
Q. 생각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대학생이 되었다는 것은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잖아요.
윤: 네 그래서 대학교 4년이 저에겐 많은 추억을 남겨준 좋은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일단 야구도 그렇고 야구 외적으로도 친구들과 즐기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대학생 때 아니면 언제 놀아보겠어요. (웃음)
Q. 대학 시절의 야구 이야기 좀 해볼게요. 수많은 타자들을 상대하면서 홈런을 단 한번도 허용하지 않았어요. 윤강민 선수 공의 어떤 점 때문에 장타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세요?
윤: 공이 좋아서라고는 생각 안하고요. 자신감이 가장 큰 무기인 것 같아요. ‘어디 한번 쳐봐라.’ 라는 생각을 갖고 공을 던져요. 그러면 타자들이 못 치더라고요. (웃음) 정말 신기 한 게 제가 연습게임 할 때에는 안타나 장타를 잘 맞아요. 막상 정식게임을 시작하면 안 그러고요.
Q. 연습게임을 설렁설렁 하는 건 아니고요? (웃음) 농담입니다. 보통 연습게임 때 못하게 되면 감독님이 실전에서 등판을 잘 안 시키지 않나요?
윤: 아무래도 그렇죠. 처음에는 어쩔 수 없어서 저를 내보내는 경우도 있었는데 막상 올라가서는 연습과는 다르게 잘하니까요. 그래서 허세환 감독님께서 ‘시합선수’라고 부르셨어요.
Q. 윤강민 선수의 경기 기록을 보면 인상적인 부분이 바로 ‘탈삼진’ 이에요. 이닝이나 사사구에 비해서 삼진 비율이 특히 높은데 어떤 무기가 있는 건가요?
윤: 저는 주로 힘 있게 공을 던지는 스타일인데 단연 최고로 힘을 써서 던질 수 있는 공이 직구잖아요. 결정구를 직구로 승부하다 보니 모 아니면 도예요. 피안타도 많아요. (웃음)
Q. 변화구에 있어서 약한 것은 아닌가요?
윤: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몸 쪽 싱커나 슬라이더를 주로 던지고, 체인지업의 제구력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 따로 연습하고 있고요.
Q. 또 들리는 말로는 직구와 변화구를 던질 때 투구폼에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윤: 예전에는 그랬어요. 그런데 프로에 가면 문제가 될 것 같아서 팔 스윙 동작부터 하나하나 고쳤어요. 그래서 지금은 투구폼만으론 직구와 변화구를 구별할 수 없으실 겁니다.
Q. 1학년 때 10회 승부치기까지 하면서 완투를 한 경기가 있어요. 보통의 사이드암 투수들에 비하면 체력이 상당한 것 같아요.
윤: 그 경기에서 10이닝 동안 130개의 공을 던졌어요. 저는 보통 경기 나가면 100~110개는 던져요. 한계 투구수를 140개 정도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체력이 월등히 좋다기 보다 몸이 유연해서 부상도 잘 없고, 공을 그렇게 던져도 연투가 가능해서 그런 것 같아요. 오늘 던지고, 내일 또 던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경기에 자주 나가는 편이고요.
Q. 다들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을 하지만, 윤강민 선수는 특히 더 많은 노력을 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성적으로 보이는 기복도 있는 편이고요. 본인의 대학 4년을 평가해본다면요?
윤: 1학년 때에는 좀 괜찮은 성적을 낸 것 같은데 2, 3학년 들어서 몸도 아팠고 그만큼 운도 잘 따르지 않았었고요. 많이 아쉬운 해였어요. 특히 2학년 때 시즌을 마친 11월에 팔꿈치에 인대가 끊어져서 수술을 했거든요. 그래도 다행인건 인대접합수술을 하고 나서 1년 안에 재활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저는 재활이 남들보다 빨랐어요. 완벽한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3학년 후반기부터 경기를 뛰게 되었죠. 그래도 그 두 시즌이 젤 아쉬움이 남아요. 올 해도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지만 열심히 했으니 후회는 없어요.
Q. 지금까지 야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꼽자면요?
윤: 경희대를 상대로 10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하계리그 결승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팀의 우승도 너무 기뻤고 그 경기로 인해서 제 이름도 많이 알린 것 같고요.
Q. 손정욱 선수와 같은 경기를 꼽았네요. (웃음) 지금까지 경기를 하면서 내 공을 너무 잘 쳐서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다면요?
윤: 경성대 4번 타자 강원형 선수한테 특히 신경을 많이 쓰고 공을 던졌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이번에 같이 입단하게 된 한양대 장동우 선수요. 원래 잘 치긴 하지만 제 공은 특히 잘 치는 타자였어요.
Q. 같이 졸업하는 친구들을 투수 대 타자로 프로 무대에서 만나게 된다면 누가 더 유리할까요?
윤: 친구들끼리 그런 얘기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저는 봐주는 거 없이 상대하려고요. 이겨야죠. (웃음)
Q. 고교 시절 감독님의 말씀대로 지금 윤강민 선수는 프로선수가 되었어요. 기분이 어때요?
윤: 새로운 곳에 가서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게 걱정이 되는데, 한편으론 재미있을 것 같아서 기대도 되요. 잘하도록 노력해야죠.
Q. 드래프트 현장에서 봤던 모습이 아직 생생해요. 운동복 차림으로 뒤늦게 행사장에 왔었죠.
윤: 그때 오전 운동 끝나고 밥 먹고 숙소에 쉬려고 누워있었어요. 근데 갑자기 코치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빨리 씻고 나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준비해서 행사장 가는 도중에 NC 다이노스에 지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정말 정신이 없었죠. (웃음)
Q. 지명 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요?
윤: 그런 건 아니고요. 행사장에 갈 생각을 아예 못하고 있었어요. 솔직히 2라운드나 특별지명 정도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특정 팀에 가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던 건 아닌데 왠지 NC 다이노스에서 저를 지명해줄 것 같았어요. (웃음)
Q. NC 다이노스 투수 윤강민이 갖고 있는 목표는?
윤: 저는 선발투수 같은 큰 자리를 원하지는 않아요. 중간에 나가서 짧게 투구를 하는 계투나, 필승조 마무리 투수로 경기에 나가고 싶어요. 다들 보통 중간계투는 항상 몸을 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그게 체질에 맞는 것 같아요. 코치님도 그런 조언을 해주셨고요. 마무리 투수를 하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자리에 가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노력하고 배우고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후에 마무리 투수로 서 보고 싶어요. 단기적인 목표로는 어떻게든 1군 엔트리에 진입해서 경기를 뛰는 거고요.
Q. 이제 유니폼을 입은 프로 선수가 되었어요. 직업이 된 만큼 책임감도 따르고, 팬들의 기대도 클 것이고요. 팀에 합류해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생각인가요?
윤: 첫 이미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팀의 모든 분들에게 그리고 팬 분들에게 열심히 하고 잘 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요.
Q. 등번호 47번을 달고 싶다고 하던데요.
윤: 그랬었는데 47번하면 나성범 선배님이 바로 떠오르는 번호라 힘들 것 같고요. (웃음) 39번이나 49번도 욕심나요. 남는 번호 중에 좋은 번호 달아야죠.
Q. 롤모델로 삼고 있는 선수가 있나요?
윤: 임창용 선수요. 투구폼이 비슷하니까 팔 던지는 각도 같은 것도 닮고 싶은데 잘 안되더라고요. (웃음)
Q. 투수로서 기복이나 슬럼프가 있을 텐데, 그럴 때 어떻게 극복하나요?
윤: 야구가 안 될 때에는 잘 되었을 때 생각을 많이 해요. 안 된다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더 안 되는 것 같아서요. ‘잘 되겠지.’ 이렇게 계속 생각을 하고, 투구폼도 바꿔가며 던지면서 슬럼프를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Q. 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적을 꼽으라면?
윤: 대학교 2학년 때요. 1학년 때 잘해놨는데 시즌 끝나고 나니 문득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3년을 더 해야 되는데 ‘내년에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여지 없이 2학년 때 기록이 안 좋았어요. 그리고 그 해 저희 팀이 2승 18패를 했고요. 팀 자체가 운이 별로 안 좋았죠. 그리고 저는 수술을 했죠. 제일 힘들었던 때였던 것 같아요.
Q. 그렇게 힘이 들 때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 있다면요?
윤: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이 가장 크죠. 힘들어 할 때마다 부모님이 많이 잡아주셨어요. 아버지는 제가 야구가 안 될 때에도 기분 좋게 웃으시면서 얘기도 나누고 많이 다독여 주셨어요. 쉬는 날이 적고 지역이 다르다 보니 명절 때나 긴 휴가를 받아야 집에 내려가거든요. 그 대신 부모님과 통화를 자주하는 편이예요.
Q. 윤강민 선수에게 야구란?
윤: 즐겁게 살아가게 해주는 ‘활력소’요. 야구로 인해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야구하면서 웃는 날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웃는 날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하고요. 그래서 저한텐 야구가 활력소인 것 같아요.
인터뷰가 끝난 후, 윤강민 선수는 제주국제대학교와의 전국체육대회 준준결승에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6이닝 0실점 1피안타 7탈삼진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되었습니다. 비록 결승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전국체육대회 준결승에 진출하며 졸업 전 마지막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윤강민 선수. 자만하지 않고 항상 성실하게 자신을 갈고 닦는 윤강민 선수의 프로 인생에는 더욱 빛나는 메달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NC 다이노스 최고의 셋업맨을 꿈꾸는 윤강민 선수에게 팬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 드립니다.
취재/글: NC 다이노스 명예기자단 권수정(ksj1390@naver.com), 김호지(hoji0602@naver.com)
사진: NC 다이노스 명예기자단 박재호(ncfan@naver.com), 김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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