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은 KIA의 승리로 끝났다. 사실 KIA의 승리라기 보다는 윤석민의 완벽한 승리였다. 윤석민은 슬라이더의 비중을 급격히 높이며 SK 타자들을 처리했다. 포수 차일목은 “슬라이더가 워낙 좋았다”고 했다. 좋은 공은 볼배합의 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5전 3선승제 승부에서 1차전의 승리는 단순히 1승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게다가 두 팀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윤석민·김광현 맞대결에서의 승리였다. KIA의 2차전 선발은 2009년 KIA가 SK를 꺾고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아퀼리노 로페즈였다. SK 선발은 송은범. 1차전 승리의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도 경기 전 예상은 KIA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자칫 준플레이오프 시리즈가 일찍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KIA는 기세를 이어갈 필요가, SK는 분위기를 바꾸는 게 절실했다.
■ 전 타석의 이미지를 활용한 심리싸움
1차전의 분위기가 1회부터 이어졌다. KIA는 1회 선두타자 이용규의 안타와 나지완의 적시타로 1점을 따냈다. 이후 김상현 타석 때 나지완이 2루에서 아웃되는 장면이 아쉬웠지만 2차전 1회 선제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단기전은 흐름싸움이고 1패를 안은 채 1점을 뒤진 상태에서 SK의 배터리는 추가점을 내주면 안된다는 부담감을 안은 채 볼배합을 가져가야 했다.
반대로 KIA 배터리는 1점을 앞선 상태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생각할 여유가 있다는 점은 상대 타자와 승부를 벌여야 하는 배터리에게 더욱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차일목은 머릿 속에 여유가 있었다.
볼배합의 기본 이론 중 하나는 ‘1-3, 2-4’다. 타자를 상대할 때 첫번째 타석과 3번째 타석을 비슷하게 가져가고 2번째 타석과 4번째 타석을 비슷하게 가져가는 방식이다. 직전 타석의 승부를 바로 다음 타석에서 반복하지 않는 게 기본이다.
KIA가 1-0으로 앞선 가운데 SK는 3회말 2사 뒤 기회를 잡았다. 박정권이 2루타를 때리고 살아나갔다. 타석에는 최동수가 들어섰다. 최동수는 1차전 9회 대타로 나서 윤석민으로부터 홈런을 때렸다. 덕분에 SK는 0패를 면했다. 최동수는 2차전에서 5번 타자로 선발 기용됐다. 전날 마지막 타석의 홈런감에 대한 코칭스태프의 신뢰였다.
게다가 윤석민과 로페즈는 슬라이더를 잘 던지는 투수였다. 최동수는 전날 1차전에서 윤석민의 슬라이더를 받아 쳐 홈런을 만들었다. 슬라이더를 때릴 수 있는 타자였다. 그런 이미지 속에 최동수는 5번에 기용됐다.
최동수는 첫 타석에서도 득점권에 타석에 들어섰다. 1회말 2사 이후였지만 주자가 1·3루에 있었다. 하지만 차일목은 최동수의 첫 타석 때 슬라이더 4개로 삼진을 잡아냈다. 파울-헛스윙-볼-헛스윙.
윤석민의 슬라이더와 로페즈의 슬라이더는 같은 슬라이더지만 다른 공이나 다름없다. 윤석민의 슬라이더가 빠르게 ‘팡’ 휘는 슬라이더라면 로페즈는 각이 크게 흐르는 슬라이더였다. 윤석민 슬라이더의 완급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장면에서 최동수가 당했다. 슬라이더를 홈런으로 만든 최동수를 상대로 ‘다른’ 슬라이더로 과감한 승부를 펼쳤다.
볼카운트 2-1에서 4구째 헛스윙에 주목해볼만하다. 최동수는 연속해서 4개가 들어온 슬라이더에 결국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또다시 바깥쪽 슬라이더였고 최동수는 헛스윙한 뒤 왼쪽 무릎을 꿇고 주저 앉을 정도로 큰 스윙을 했다. 커다란 헛스윙 - 공과 차이가 많이 나는 - 은 타자를 쫓기게 만든다. 타자가 쫓기는 2가지 장면은 대개 이처럼 커다란 헛스윙과 몸쪽 ‘멕히는’ 타구 이후에 나온다. 첫 타석, 그것도 2사 1,3루에서 나온 큰 헛스윙은 최동수에게 심리적 데미지를 줬을만 했다.
차일목의 머릿 속에는 첫 타석의 그 헛스윙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최동수의 2번째 타석도 2사 2루 기회였다. 이번에는 차일목이 다르게 움직였다. 2차전 초반 가장 중요한 장면이 여기서 나왔다. 차일목은 최동수가 타석에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수비진을 향해 사인을 보냈다. 수비진의 위치 조정이었다. 중견수 이용규가 앞으로 움직였다. 중견수를 앞으로 당긴다는 것은 몸쪽 승부를 통해 타구를 ‘멕히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차일목의 머릿 속에 몸쪽 승부가 그려졌다. 앞선 타석에서 슬라이더 4개로 삼진을 잡아낸 타자를 상대로 ‘반대 승부’가 계산됐다. 그 헛스윙의 이미지도 남아 있는 상태다. 바깥쪽 슬라이더에 크게 헛스윙한 타자의 반대쪽 약점을 공략하는 방식. 1-3, 2-4 볼배합 기본 공식이다.
승부는 반대로 이뤄졌다. 공 4개가 모두 몸쪽을 향했다. 초구는 차일목이 몸쪽으로 붙어있는 상태에서 제구 미스로 바깥쪽을 향했지만 나머지 3개는 모두 최동수의 몸쪽으로 붙었다. 볼카운트 1-2에서 몸쪽 승부구에 최동수의 방망이가 소위 ‘멕혔다’. 타구는 힘없이 중견수 앞으로 날아갔다. 일찌감치 수비 위치를 당겨놓고 있던 이용규가 쉽게 공을 잡아냈다. 차일목의 완벽한 승리였다.
포수들은 타자와 상대할 때 항상 전 타석, 전전 타석의 이미지를 활용한다. 항상 머릿 속에 그리는 그림이다. 차일목은 최동수와의 2차례 승부에서 정 반대의 볼배합으로 타자를 잡아냈다. 특히 3회말 2번째 타석에서는 미리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여유까지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차일목과 호흡을 맞춘 로페즈의 볼배합이 빛나는 장면이었다. 로페즈는 점수를 잘 주지 않는 투수다. 위기 상황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활용할 줄 안다.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쓰는 데 대한 의식이 리그에서 가장 강한 투수로 꼽힌다. 위기 상황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쓰는 것은 위기 관리의 기본이다. 최동수를 상대로 두 차례 득점권 상황에서 좌우 폭을 넓게 가져가며 점수를 주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PS.
2011시즌 LG가 주자 3루 상황에서 득점 확률이 떨어졌던 이유 중 하나는 로페즈의 승부과 관계가 깊다. 득점권 상황에서 맞는 타자의 심리는 어느 정도는 쫓길 수박에 없다. 특히 몸쪽 공을 처리할 수 있는 마음가짐에서 부담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실패들이 쌓여서 득점권에서 약하다는 심리적 부담감까지 더해지면 전체적으로 선구안에 문제가 생긴다. 좌우 넓은 공간을 모두 커버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지면 로페즈 처럼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쓰는 투수에게는 쉽게 당할 가능성이 높다. 2011시즌 로페즈는 LG를 상대로 방어율이 1.20으로 로페즈가 상대한 7개 구단 중 가장 낮았다. 피안타율이 0.177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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