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럼프에 빠진 야구 선수는 어떤 기분일까. 1980년대 메이저리그 3루수로 활약한 밴스 로우(Vance Law)는 “슬럼프일 때는 경기장이 온통 커다란 글러브 하나로 채워져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소설가 다카하시 켄이치로는 “야구한테서 버림을 받은 것과 같다”([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고 슬럼프를 묘사했다. 누군가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느낌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슬럼프가 가져오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NC 3루수 강진성은 지난해 바닥을 쳤다. 일년 내내 길고도 깊은 슬럼프에 빠져 곤혹을 치렀다. 하필이면 그것도 야구선수 인생에서, 어쩌면 제일 중요할지도 모르는 시기에 최악의 슬럼프에 시달렸다. 이른바 ‘고3병’,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를 앞둔 해에 성적이 추락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2011년 14경기 출전에 48타수 6안타로 타율 1할 2푼 5리, 홈런 2개와 타점 3개가 고3 강진성이 거둔 성적의 전부였다. 방망이에 공이 전혀 맞질 않았다. 부진에서 벗어나려고 밤 늦게까지 스윙을 해봐도, 심호흡을 하고 머리 속을 비워봐도 소용이 없었다.
부진의 표면적인 원인은 3학년 올라가기 전에 받은 팔꿈치 수술. 하지만 심리적인 부담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더 큰 원인이었다.
“가장 힘든 시기가 고3인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었어요. 일단 1, 2학년 때보다 다른 팀의 견제가 훨씬 심해졌어요. 상대팀도 저를 잘 아니까 좋은 볼도 안 주고, 프로팀 스카우트 분들이 다들 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다 보니까 부담도 됐구요. 한편으로는 뭔가 보여줘야겠다, 내가 해결해야겠다는 욕심도 있었어요.”
슬럼프 이전까지만 해도, 강진성의 야구는 좌측 담장으로 쭉쭉 뻗는 홈런 타구처럼 거칠 것이 없었다.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때부터 선배들과 함께 주전으로 활약했다. 2학년 때인 2010년 7월에는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대표팀 명단에 2학년 선수는 강진성과 신일고 하주석(한화), 둘 밖에 없었다. 좌타자에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을 자랑하는 하주석과, 우타석에서 힘있는 타격을 자랑하는 강진성을 사람들은 ‘라이벌’이라 불렀다. 절친한 친구인 두 선수는 국내는 물론 미국 프로 구단 스카우트들까지 주목하는 유망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3학년이 되면서 둘의 운명은 크게 엇갈렸다. 하주석이 비교적 꾸준한 활약 끝에 전체 1라운드 1순위로 한화의 지명을 받은 반면, 부진에 빠진 강진성은 지명 순위가 한참 뒤로 밀려났다. 4라운드 33번. 선수의 현재보다는 미래에 발휘될 잠재력을 눈여겨본 신생 NC 다이노스의 선택을 받았다. 당시 한 아마야구 관계자는 “강진성은 제 컨디션만 찾는다면 1라운드급 재능을 지닌 선수”라며 “이런 선수를 4라운드에서 얻은 건 NC의 멋진 스틸픽”이라고 평가했다. 강진성 입장에서도 NC행은 행운이었다. 1년을 퓨처스리그에서 보내는 만큼, 잃었던 타격감과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NC 입단 뒤 강진성은 빠른 속도로 슬럼프에서 빠져나왔다. 3학년 내내 고민에 빠진 듯 어두웠던 강진성의 표정은, 강진과 제주에서 70일의 캠프를 거치는 사이 몰라보게 밝아졌다. 팀 관계자들도 “강진성이 생각보다 발전 속도가 빠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름 그대로 ‘강진’에서 길을 찾은 셈이다.
다시 찾은 자신감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애리조나 전지훈련에서 열린 프로 1군 한화와의 연습경기. 3번타자로 선발출장한 강진성은 한화 송창식을 상대로 선제 투런포를 쏘아올리며, 팀의 역사적인 첫 승을 이끌었다. 고교 시절 기대했던 ‘우타거포’의 모습 그대로였다. 팀의 자체 청백전에서도 강진성은 3안타를 터뜨리며 좋은 타격감을 이어 나갔다. “원래가 좋은 자질을 가진 선수였습니다.” 한 고교 감독의 평가다. “투수 출신이라 어깨도 강하고 힘과 정확성도 좋죠. 발도 느린 편은 아니구요. 무엇보다 연습벌레로 불릴 만큼 성실한 선수입니다.”
NC의 한 관계자는 “야구인 2세라 행동이나 생각하는 게 역시 다르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강진성은 한국야구위원회(KBO) 강광회 심판위원의 아들이다. “야구선수로서 갖춰야 할 태도나 생활 습관에 대해 아버지에게 교육을 잘 받은 것이 드러난다”는 평이다. 강진성도 아버지의 영향을 부정하지 않는다. 슬럼프에 시달릴 때 아버지가 어떤 조언을 해줬는지 묻자, 강진성은 “이치로도 타격이 잘 안 될 때가 있는 법이다, 야구는 단기간이 아니라 길게 보고 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다”고 답했다. 또래 선수들이 대부분 우투좌타인데 비해 우타석을 고집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라고. “네가 가장 편한 쪽에서 타격하라고, 타이밍 잡는 것도 왼쪽보다는 오른쪽이 더 낫다고 하셔서 계속 오른쪽에서만 타격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잘한 결정인 것 같아요. 프로에도 요새는 우타자가 희귀하다고 하니까요.”
강광회 위원은 프로 입단을 앞둔 아들에게 베테랑 심판다운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아버지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 ‘볼이라고 생각한 공을 심판이 스트라이크라고 해도, 심판과 싸우지 말고 경기에 집중해라!’에요.” 심판 판정에 일일이 신경 쓰다 보면 자기 페이스를 잃을 수 있다는 충고인 셈이다. 한편 아버지가 심판이다보니 가끔 인터넷에서 판정을 비난하는 팬들의 댓글을 보면 속상하기도 하다고. “가족이니까 심판 욕하는 글을 보면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죠. 기분도 상하구요.” 야구 부자의 피는 진하다. 하지만 야구장에서 선수 대 심판으로 만나게 된다면 크게 의식하지 않고, 다른 심판과 똑같이 생각할 거라는 게 강진성의 얘기다.
강진성의 롤 모델은 두산의 김동주다. “타격도 어깨도 수비도 좋고 몸도 유연하잖아요. 김동주 선배처럼 다 잘하는 만능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프로에서 33경기 3안타만을 남기고 은퇴한 아버지가 못 이룬 성공을 이루는 게 강진성의 꿈이다. 바닥을 치면 올라가게 마련인 게 세상사. 야구인생 최악의 슬럼프에서 탈출한 강진성은, 이제 높은 곳을 향해 훌쩍 날아오를 준비를 마친 상태다. 어쩌면 지금쯤, 야구공이 수박만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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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꼇어여 ㅋㅋ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