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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헌의 러버게임(종료)

NC의 초소형, 초강력 엔진 김태진 다이노스 피플
2013.12.09 13984



NC 신인 내야수 김태진은 2014 지명 신인 117명 중 최단신이다. 키 173cm에 체중 68kg. 2013 시즌 전체 프로야구 선수들의 평균치(182.5cm/85.1kg)보다는 한국 20대 남성 평균(2010년 기준 173.5cm/68.9kg)에 더 가깝다. 하지만 센티미터와 킬로그램만으로는 김태진의 잠재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전설의 투수 톰 글래빈의 명언을 조금 바꿔 인용하자면, ‘야구를 향한 김태진의 열정은 신장계와 체중계에는 찍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선수의 야구 열정을 눈에 보이는 수치로 측정할 수 있다면, 김태진은 단연 최장신-최중량 감이다. 


“항상 파이팅이 넘치고, 눈빛이 살아있는 선수에요.” 한 베테랑 스카우트가 올해 초에 들려준 얘기다. “평상시에는 귀여운 막내 같은 인상인데, 일단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나오면 눈빛이 180도 달라집니다. 악착같이 상대를 물고 늘어지고, 몸 사리지 않고 항상 전력을 다하는 게 보여요. 마치 정근우나 이용규를 보는 것 같아요. 경기 중 순간적인 판단력과 야구에 대한 이해도도 뛰어납니다.”


작은 체격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체격 좋다고 다 야구 잘하는 거 아니잖아요.” 스카우트의 얘기다. “물론 신체조건을 보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아무리 키 크고 몸이 좋아도 야구 머리가 떨어지면 기량이 좀처럼 늘지를 않아요. 또 야구에 대한 열정이나 근성이 없으면 1군 선수가 되기까지의 힘든 과정을 이겨내기 어렵구요. 태진이가 키는 좀 작을지 몰라도, 대신 빼어난 두뇌와 뜨거운 심장을 갖고 있어요. 반드시 좋은 선수가 될 거라고 봅니다.”


신장과 체중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김태진 본인이다. “키는 일찌감치 포기했어요.” 김태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야구가 잘 안 되서 스트레스 받으면 모를까, 제가 어쩔 방법도 없는 것 가지고 스트레스 받아봐야 저만 힘들죠. 안 되는 건 미리 포기하고, 대신에 열심히 웨이트 트레이닝하고 러닝하면서 제 장점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내가 야구만 잘하면 어디서든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리는 대신, 김태진은 실제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항상 경기에 나설 때마다 머릿속으로 목표를 세웁니다.” 김태진의 말이다. “안타 몇 개를 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오늘은 어떻게 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를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경기를 준비해요. 누구한테든 지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거든요.” 한 게임에 안타 4개를 때려냈어도, 팀이 진 날은 분해서 잠이 들지 못한다. “저는 어떻게 해서든 이기고 싶어요. 10번 싸워서 9번 졌어도 전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이길 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


자신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는 김태진이 야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마음 깊이 뿌리내린 것이다. “수유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어요. 세 살 많은 형이 같은 학교에서 야구를 했는데, 형이 하는 모습이 되게 재미있어 보이더라구요. 어머니께 ‘나도 교복 맞춰달라’고 졸라댔어요. 유니폼을 제 딴에는 그렇게 표현했던 거죠.” 일단 ‘교복’을 입는데는 성공했지만, 경기에서 뛸 기회를 얻기까지는 3년을 기다려야 했다. “처음 입부해서 몇년간은 뒤에서 형들 심부름을 주로 했어요. 경기 출전은 이따금 대타나 대주자로 나가는 정도였죠. 그러다 5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나설 기회를 얻게 됐어요.“


처음에는 중견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태진은 외야수용과 내야수용 글러브, 심지어는 포수 미트까지 사용하게 된다. “팀에서 필요한 포지션은 뭐든지 가리지 않고 맡았어요. 5학년 후반에는 2루수와 유격수로 뛰었고, 그 다음에는 투수도 보고 포수도 해봤죠.” 야구를 하기 전까지 김태진은 태권도와 체조에도 재능을 보였다. 그만큼 운동 신경이 좋고 머리로 생각하는 동작을 몸으로 옮기는 능력이 뛰어났다. 어떤 역할을 맡겨도 만족스럽게 제 몫을 해내는 선수는 언제 어디서나 감독에게 사랑받는 법이다. 덕분에 초등학교부터 신일중-신일고를 거치는 내내, 김태진은 한순간도 감독의 애정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대표적인 예는 신일고 최재호 감독이 있다. 최 감독은 김태진이 입학한 1학년 때부터 바로 주전 외야수 겸 2번타자로 기용했다. 김태진도 전기 주말리그 6경기 타율 3할6푼4리, 황금사자기 대회 3경기에서 타율 4할4푼4리를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했다. 2학년때는 3학년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 유격수 겸 톱타자 자리를 맡겼다. 2012년 고교 최대어였던 하주석만큼이나 최 감독의 총애를 받은 셈. 이는 올해 세계청소년대표팀 감독을 맡은 덕수고 정윤진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대표팀에서 김태진을 외야수로 기용할 생각입니다.” 지난 8월 대표팀 훈련장에서 정윤진 감독이 한 얘기다. “워낙 재치 있고 센스만점인 선수잖아요. 원래는 유격수지만, 대표팀 선수 구성상 외야수가 필요해서 한번 시켜봤어요. 곧잘 해내더라구요.” 김태진은 감독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타이중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대회 8경기에 외야수로 출전, 31타수 13안타 타율 4할1푼9리에 도루 5개로 펄펄 날았다. 대회 도루부문 공동 1위는 물론 최다안타 2위, 득점 5위, 타율 8위로 대표팀 타자들 중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저는 그저 경기에 나갈 기회를 잡는 게 목표였어요.” 김태진의 말이다. “다른 학교에 쟁쟁한 유격수들이 워낙 많잖아요. 주전은 힘들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부르시더니 ‘외야 해본적 있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해본적 있다고, 시켜만 주시면 어딜 맡겨도 잘할 자신이 있다고 말씀드렸죠.” 김태진은 자신의 장담대로 외야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또 특유의 허슬플레이로 내외야를 휘저으며 대표팀의 무기력한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애썼다.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쉬워요. 물론 저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험이 됐어요. 국제경기는 학교끼리 하는 주말리그와는 차원이 다르더라구요. 저보다 잘하는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걸 느꼈어요. 다른 선수의 플레이를 눈여겨봤다 따라해 보기도 했구요.”


마스코트와 치어리더를 제외한 야구장의 전 포지션을 섭렵한 김태진이지만, 그래도 가장 마음이 가는 자리는 역시 유격수다. “물론 팀이 원한다면 어느 자리든 잘 해낼 자신은 있어요. 여러 포지션을 보는 게 나름대로 재미있기도 하구요. 그래도 제가 계속해서 해온 포지션은 유격수니까요. 저한테 제일 잘 맞는 자리는 유격수라고 생각해요.” 어릴 적 맨 처음 좋아했던 선수도 이번에 NC로 이적한 손시헌이다. “초등학교 때 두산 팬이었어요. 그때 손시헌 선배님이 주전 유격수로 좋은 활약을 하셨잖아요. 같은 포지션이다 보니 선배님 플레이를 눈여겨보고 많이 배웠죠.” 또 김경문 감독 특유의 빠른 발을 활용한 공격적인 야구도 어린 김태진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을 강한 인장을 찍었다.


‘인연’이란 게 정말로 있는 것일까. 서울 토박이로 자란 김태진이 어린 시절 동경하던 대선배, 그리고 명감독과 창원 연고의 NC에서 만나게 될 줄 그 누가 예상했을까. 8월에 열린 신인 2차 드래프트에서 김태진은 4라운드에서 NC의 선택을 받았다. 이제는 눈으로만 보던 김경문 감독의 ‘발야구’를 몸으로 직접 수행해야 한다. TV로 보며 감탄하던 손시헌 선배와는 유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빠른 발과 주루 센스, 정교한 타격에 수비능력까지 갖춘 선수입니다.” NC 스카우트의 지명 당시 평가다. “무엇보다 요즘 선수답지 않게 근성 있는 모습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김태진 역시 NC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선택했는지를 잘 안다. “투지와 승부욕만큼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김태진의 각오다. “신인이니까, 기회가 주어지면 팀 승리에 어떻게든 도움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타격이야 못칠 때도 있고 잘칠 때도 있지만, 달리고 슬라이딩하고 몸을 던지는 데는 슬럼프가 없잖아요. 팀을 위해 뭐든 다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김태진은 열심히 뛰고 몸을 날리다 보면, 자신이 야구하면서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도 함께 따라온다고 믿는다. “먼 훗날 제가 이루고 싶은 꿈은, 야구선수로서 명예를 얻는 거에요.” 돈도 좋지만 그보다는 선수로서의 명예를 얻고 싶다고 했다. “명예는 단지 야구를 잘하기만 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야구는 똑같이 잘하는데도 높은 명예를 얻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선수도 있죠. 명예가 있는 선수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명예는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에게 주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답하는 김태진의 모습이, 문득 실제보다 더 크고 듬직하게 느껴졌다.


열아홉살 소년답지 않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금까지 김태진은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고3이 된 올해 내내 팔꿈치 통증을 참아가며 팀을 위해 전 경기에 출전했고, 그러면서도 4할대 타율과 5할대 장타율로 고교 유격수 중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수술 후 재활중인 지금도, 한시라도 빨리 운동장에 나가고 싶어 안달내는 사람이다. 아마 내일 당장 엉뚱한 포지션으로 경기에 나가라는 지시를 내려도, 그에게서는 ‘할 수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NC가 작지만 아주 강력한 엔진을 새로 얻었다. 이제 거침없이 가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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