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룡의 꿈을 향한 NC 다이노스의 발자취와 팬 여러분의 이야기가 함께하는 공간입니다.

‘타자’ 나성범의 새로운 꿈
2011-12-07 32855

비바람이 휘날리는 제주 강창학 야구장. 등번호 47번 나성범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글러브가 아닌 배트를 들고, 모자가 아닌 헬멧을 머리에 쓰고서...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연세대학교 에이스 투수였던 그의 포지션은 ‘외야수’다. 정기전에서 고려대 마지막 타자를 아웃시키고 두 팔을 번쩍 치켜들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한 탓일까, 연습 타석 뒤에서 기다리는 그의 모습이 어딘지 어색하게 보였다. 하지만 타석에서 나성범이 배트를 휘두르기 시작하자, 그 어색함은 외야 먼 곳으로 날아가 사라져버렸다.

 

빵!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빵!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 빵! 가운데 펜스에 맞는 장타. 연습 타격 때는 모두가 외야로 공을 날려 보내는 법이긴 하지만, 타구의 궤적과 비거리 모두 인상적이었다. 외야 깊숙이 떨어진 공에 멈췄던 시선을 다시 타석으로 옮겼을 때, 거기에는 더 이상 투수 나성범은 존재하지 않았다. ‘타자’ 나성범이 눈에 보였다. 연습 후 양해를 얻어 '타자' 나성범 선수와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의 부담감 속에서도 굳은 의지를 느낄 수 있었던 그와의 대화 내용을 소개합니다.

 

 
일전에 한 야구인은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면 몸의 생리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타자로 변신한지 한 달이 지났는데, 힘들지 않은가.
- 아직은 적응기간이라 여러 가지도 힘든 점이 많다. 힘들지 않다면 사실 거짓말이다. 일단 그동안 하지 않던 훈련을 많이 하다보니 몸에 무리도 많이 오고, 쓰지 않던 근육을 써야 하니까.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신체적으로 힘든 것 같다. 투수를 할 때는 웨이트도 많이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힘이 달리면 안 되니까 웨이트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하던 포지션을 계속하는 선수들도 프로의 훈련에는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게다가 다른 포지션에서 훈련을 하는 상황이라 어려움이 클 것 같다.
- 4년이란 시간 동안 투수로 지냈다. 물론 타석에서 서긴 했지만 집중적으로 전념해서 한 게 아니라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배우고 있다.

 

지난 10월말 NC에 합류한 뒤 김경문 감독과의 면담을 통해 타자 전향이 결정됐다. 처음 타자 전향을 권유받았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 그전에도 기사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감독님의 의중을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제안하실 줄은 몰랐다. (웃음) 솔직히 처음에는 왜 타자를 하라고 하시는지 잘 이해를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감독님 말씀을 듣고 면담을 계속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감독님께서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주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선수들 중에 나를 딱 꼽아서 ‘키워보겠다’고 말씀해 주신다는 게 참 감사했고,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포지션 전향이 성공하려면 지도자와 선수 간의 신뢰는 필수다. 또 시키니까 할 수 없이 하는 것보다는 ‘내가 왜 이걸 하는지’ 납득해서 한다는 게 중요할 것 같다.
- 맞다. 그렇지 않다면 나 스스로도 타자 전향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감독님께서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셨고, 나 역시도 감독님의 결정에 믿음이 있기에 이렇게 따라갈 수 있다. 무엇보다 내가 빨리 적응하고 변신에 성공하려면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도 타자로서의 나성범을 더 높게 평가한 이들이 많았다. 4년 전에 LG에서 지명했을 때도 야수로서 가능성을 높이 사서 지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 사실이다. 대학교 때는 물론이고 고교 때부터 타자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고민을 하긴 했는데, 그래도 어릴 때부터의 꿈이 투수였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형(나성용, LG)과 배터리를 이루는 모습을 상상하며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으니까.

 

이제는 그 꿈은 접은 건가?
- 꿈이 달라졌다. 롤 모델도 추신수, 이승엽 선배로 바뀌었다. (웃음) 투수에 대해 미련을 남겨두면 안 될 것 같다. 타자를 하기로 했으면 타자에 올인해야 한다. 이거했다가 저거했다 하는 식으로는 이도저도 아닐 것 같다. 한 가지에만 집중해도 성공할까 말까 하는 게 프로아닌가.

 

말에서 절박함이 느껴진다. 김경문 감독은 선수의 절박함에서 잠재력을 끌어내는 지도자다.
- NC 와서 훈련하면서 감독님께서는 선수의 실력 이전에 야구에 임하는 자세나 정신력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힘들어도 참고 이겨낼 줄 아는, 파이팅이 넘치고 패기 있는 강한 모습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몸에 공을 맞더라도 어떻게든 1루까지는 걸어 나가는 모습, 강한 정신력을 원하신다는 걸 알게 됐다. 그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타격연습에서는 대부분의 공이 외야로 뻗어나갈 만큼 감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실전 타석은 또 다를 것 같다.
- 실전과 연습은 분명 다르다. 경기에서 타석에 들어섰을 때 자꾸 성급해지는 경향이 있어 걱정이다.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나가야 하는데, 공만 눈에 들어오면 치려고 하다 보니까 생각만큼 좋은 타구가 안 나오는 것 같다.

 

투수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투수 심리를 읽거나 볼배합을 예측하는 면에서는 강점이 있을 것 같은데.
- 그렇지도 않다. 투수마다 다 다르니까. 투수가 내가 생각한대로만 던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아직까지는 타석에 들어서면 뭔가 마음이 급해지는 것 같다. 편하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데.

 

사실 아직은 생각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 준비단계인데 안 맞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래서 잘 맞고 안 맞고에 대해 크게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타격폼은 어떤가. 새롭게 만드는 중인가?
-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타격폼에는 큰 문제는 없다고 하셔서, 원래 타격폼에서 약간의 변화만 준 상태다. 나에게 더 편안한 자세로 만들어가려 한다. 코치님들이 워낙 꼼꼼하게 잘 가르쳐 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내년 한 해를 퓨처스리그에서 보내게 된다. 어떻게 보면 타자로서 준비할 시간이 있다는 게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 실은 1군에서 좀 더 빨리 붙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해서 아쉽다. 2군에서 뛰면 경험이 2군 레벨에 맞춰지니까, 나중에 1군에 진입할 때 오히려 힘들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1군과 붙어서 지더라도, 1군 레벨이 어떤지 알아야 약점을 보완하고 동등한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타자 입장에서도 1군급 투수의 공을 많이 봐야 익숙해지고 파악이 될 텐데.

 

여러 가지로 부담감이 상당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 부담감은 전혀없다. 그런게 있으면, 될 일도 안된다. 지금까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