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의 꿈을 향한 NC 다이노스의 발자취와 팬 여러분의 이야기가 함께하는 공간입니다.
춘계리그, 추계리그, 대학야구선수권대회, 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 KBO총재기, 전국체육대회 등 모든 대학야구대회에서 한 차례 이상씩 우승컵을 거머쥔 강호 성균관대학교 야구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승전에서의 5번의 패배는 성균관대학교를 '준우승팀'으로 더 많이 불리게 하였습니다.
오늘 만나볼 성균관대 삼총사 구본욱ㆍ김건우ㆍ임정호 선수들은 자신들의 모교에 붙여진 ‘준우승팀’이라는 별명을 떼어내기 위해 하루에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야구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평균키 186.3cm, 평균몸무게 86kg에 이르는 건장한 체격, 그러나 그 속엔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품고 있는 성균관대 삼총사의 이야기를 명예기자단이 전해드립니다.
Q. ‘信人을 꿈꾸는 新人들’ 인터뷰의 시작을 알리는 공식 질문입니다. NC 다이노스에 입단하게 된 소감이 어떠세요?
구본욱(이하 구): 프로팀에서 저를 불러주었다는 게,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해왔던 것에 대한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어요. 항상 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열심히 해서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고자 합니다.
김건우(이하 김): 신고선수로 입단하게 되었지만 테스트를 합격했을 때의 기쁨이 생생해요. 야구를 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은 누구나 프로에 가고 싶은 꿈이 있잖아요. 저 역시 그랬고요. 그렇게 바래왔던 꿈을 이뤘다는 점에서 감회가 남달랐어요.
임정호(이하 임): 저도 마찬가진데요, 처음 야구할 때부터 꿈꿔왔던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다는 게 정말 기뻤어요. 게다가 신생팀이라 아무래도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질 것 같아서 기대가 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이 되고 여러모로 좋습니다.
Q. 아시다시피 벌써 세 번째 삼총사 이야기에요. 경남대의 권희동, 박으뜸, 임제우 선수가 있었고, 동의대의 강동호, 김성호, 이상민 선수가 있었고요. 그리고 오늘 세 분들은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삼총사인데요. 대학 시절, 첫 만남에서 첫 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먼저 구본욱 선수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김: 저는 (구)본욱이와 같이 대구에서 야구를 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봐왔어요. 제 스스로 대구에서 제일 잘 던지는 투수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본욱이는 대구에서 정말로 제일 공을 잘 치는 선수였고요. 그래서 잘 알고 있었는데 제가 초등학교 때 처음 본욱이를 봤을 때, 어린애 같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들었어요. 그때부터 덩치가 남달랐거든요. 저도 계속 크는데 그만큼 본욱이도 크니까 초등학교 때는 중학생이랑 시합하는 느낌이었고, 중학교 때는 고등학생이랑 시합하는 느낌이었어요.
임: 이런 말 해도 되요? 저는 (구)본욱이 처음 봤을 때 진짜 조폭인줄 알았어요. (웃음) 야구하는 모습을 본 적 있었지만 사복 입은 모습은 처음이었거든요.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본욱이가 정장을 입고 서 있었어요. 정말 야구선수인 줄 몰랐어요. 덩치가 너무 좋아서 제 또래가 맞나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구: 제가 지금 몸이 고등학교 때 몸이랑 똑같아요. (웃음)
(Q. 김건우 선수의 첫인상은 어땠어요?)
구: 아까 (김)건우가 말했다시피 저희는 초등학교 때부터 봐서 잘 알았어요. 건우가 대구에서 정말 잘 던지는 투수였어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도 많이 오셨었고, 허리부상이 없었다면 메이저리그도 꿈꿀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저희 부모님이 한번은 ‘네가 건우 볼을 칠 수 있어야 프로에 갈 수 있다.’ 라고 말을 하신 적도 있을 정도니까요. 제 기억 속에 있는 건우의 첫인상은 ‘정말 잘하는 선수’였어요.
임: 아까 화장실에서 만난 조폭 옆에 조폭 한 명이 더 있었어요. 그게 건우였어요. (웃음) 농담이고요, 건우가 되게 바르고 착해요. 첫인상도 좋았고, 지내면서도 건우한테 선수로서 좋은 말을 많이 들었어요. 고마운 친구에요.
(Q. 임정호 선수의 첫인상은요?)
구: (임)정호가 계속 조폭이라고 말했던 날이 성균관대 면접이 있는 날이었어요. 면접장에 신일고 출신인 정호랑 다른 친구가 있었는데 정호 혼자 떨어져 앉아있는 거예요. 표정도 뚱하고. 흔한 말로 ‘시크하다’라고 생각했어요. 워낙 말수도 적고 조용해 보였으니까요. 대학생활이 시작되고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돼서 한번은 둘이 치맥을 먹으러 갔는데 얘기를 나눠보니까 제가 생각했던 게 다 편견이더라고요. 착하고 진짜 괜찮은 친구라고 느꼈죠. 그 후로 정말 많이 친해졌어요.
김: 정호가 서울사람이잖아요. 잘생겼는데 깍쟁이 같은 느낌이었어요. 가만히 있으면 인상이 날카롭고 차갑거든요. 근데 막상 이야기 나눠보니 의외로 착한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착할 줄 몰랐거든요. 웃으면서 인사를 해도 뚱하게 인사를 받는 아이였으니까요. (웃음)
Q. 4학년이 되면서 구본욱 선수가 주장을 맡았는데. 옆에서 보기에 주장으로서 구본욱 선수는 어땠나요?
김: 주장이면 애들에게 주의를 줄 수 있는 카리스마가 필요한데 (구)본욱이는 그냥 착해요. 후배들한테 싫은 소리도 잘 못하고요. 저희는 입학할 때부터 선배들과의 관계가 엄격했어요. 아마 본욱이는 그게 싫었나 봐요. 그래서 후배들을 더 편하게 해주고, 강압적으로 팀을 이끄는 게 아니라 잘 따라오게끔 그만큼 자기가 잘 해주려고 하는 스타일의 주장이었어요. 흔히 운동부하면 떠올리는 기합 같은 것도 한번을 안 줬어요. 그야말로 진짜 ‘착한’ 주장이었죠. (웃음)
임: 맞아요. 저희 1학년 때 선배님은 정말 엄했어요. 기합도 자주 받았고, 본욱이는 그걸 안 한다고 했고 저희도 팀 분위기가 좋아져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효과가 났네요. (웃음) 농담이고요, 솔직히 팀 성적이 아쉬운 건 맞지만 그건 주장의 탓이 아니죠. 본욱이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주장의 모습에 가까웠어요.
Q. ‘주장 구본욱’에 대한 친구들의 평이 좋은데, 뿌듯하시겠어요. 하지만 친구들이 모르는 주장으로서 힘들었던 것들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구: 일단 제가 이렇게 주장 역할을 한 건 1, 2학년 때 제가 겪었던 대학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요. 적응하기 힘들만큼 늘어난 훈련량에 무서운 운동부 분위기까지 더해지니까 야구가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고 그랬거든요. 한번은 말 없이 짐 싸서 대구로 내려온 적도 있어요. “엄마 나 힘들어서 야구 안 할래”하고 무작정 내려온 거죠. 그 정도로 힘들었었어요. 친구들도 똑같이 힘든 처지인데 친구들한테 기댈 순 없었고, 그런 순간에 위의 선배들이 “힘들지?”하면서 다독여주고 마음을 알아줬다면 제가 그런 행동은 안 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주장되는 날 후배들 다 모아놓고 얘기했어요. 힘들면 얘기하고 대화로 풀어 가자고요. 친누나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제가 짐 싸서 내려왔다가 다시 학교로 가고 나서, 부모님이 일주일 동안 다리 뻗고 주무신 적이 없으셨데요. 그 얘기를 후배들한테 했어요. 그 덕에 분위기는 잘 잡힌 것 같아요. 이제 좋은 분위기에서 팀 성적을 올리는 건 남은 후배들의 몫이죠. (웃음)
Q. 성균관대 야구부의 강도 높은 훈련량은 다른 학교 선수들 사이에선 유명하던데요, 김건우 선수는 야구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을 성균관대 입학하고 나서라고 한 적도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김: 입학하고 2년 동안은 정말 힘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어요. 야구도 잘 안되고, 학교가면 일단 기합 받고 시작하니까요. 학교 일상이라는 게 일어나서 연습하고 밥 먹고 연습하고 빨래하고 자고, 이게 전부였어요. 하루 세끼 먹는 것, 샤워하고 방 청소하고 빨래 하는 시간 외엔 계속 야구공 잡고 방망이 잡고 있었으니까요. 살인적인 연습량에 몸은 힘들고 스트레스가 심하니까 야구 하기 싫다고 부모님하고 갈등도 심했고요. 근데 지나고 보니까 그냥 다 한 순간이더라고요. 더한 것도 버틸 수 있다는 의지는 확실히 생긴 것 같아요.
Q. 대학야구를 보는 팬들 사이에선 간혹 임정호 선수에 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이 들릴 때가 있어요. 이를테면 팀의 실책이 나오거나 안타를 맞을 때 표정에서 싫은 내색이 다 드러난다는 것 등이요. 막상 주위 사람들의 임정호 선수에 대한 평은 좋은데, 왜 이런 이야기들이 있는 걸까요?
임: 제 표정 탓인 것 같아요. 가만히 있으면 “왜 인상 쓰냐?” 라고 하고, 웃으면 “왜 비웃냐?” 라고 해요. 그럴 땐 정말 제가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어요. 심지어 학교 선생님, 코치님, 감독님까지도 저를 싫어하셨어요. 표정 때문에 혼난 적도 많고, 인상이 안 좋다고 말도 안거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한번은 춘계리그 준결승전에서 원광대에게 안타를 맞았을 때 제가 뒤돌아서 욕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어요. 그때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에요. 야수들 에러도 많았고요. 그 때 유격수를 보던 후배가 저한테 공을 던져주면서 "죄송합니다"라고 했는데 관중석에 있던 분들은 ‘임정호가 욕하고 인상 써서 후배가 사과를 했다’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건 정말 아닌데, 어떻게 말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라도 오해를 푸셨으면 좋겠어요.
구: 이건 주장으로서 아니 4년간 함께 생활한 친구로서 하는 말인데 (임)정호는 감정이 표정으로 나타나는 애가 아니에요. 눈이 크고 눈매가 매섭게 생겼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인상이 차가워져요. 감독님도 어디 가서 오해 받지 않게 표정관리 잘하라고 항상 말하셨어요. 그래서 정호가 웃는 연습도 하고 일부러 더 웃고 다녔는데 입꼬리가 한쪽이 더 올라가서 비웃는 거 같아 보였나 봐요. (웃음) 웃는 걸로도 혼나니깐 정호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정호 본인도 노력 많이 하고 있으니까 팬분들께서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Q. 사실 저도 인터뷰 전 사진 촬영 할 때, 임정호 선수 표정이 좋지 않아서 기분이 나쁜 줄 알았어요. 추운데 밖에서 찍는다고 화가 난 걸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제가 오해를 하고 있었네요.
임: 저 정말 불만 없었어요. (웃음) 팬분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거니까 잘 보이고 싶어서 정말 의욕을 가지고 촬영에 임했어요. (웃음)
Q. 세 선수의 아마추어 시절이 많이 궁금한데요, 학창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하나씩 꼽아본다면 어떤 경기들이 있을까요?
구: 2011년도 대통령기 결승전이요. 그때 저희 학교가 결승전을 5번 갔는데 다 져서 준우승만 5번을 했거든요. 준우승팀이라고 불리는 상황에서 우승을 향한 6번째 도전이었던 경기였죠. 상대가 중앙대였는데 1회에 2점을 내줬어요. 경기하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더그아웃 분위기는 벌써 가라앉았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들어섰어요. 2아웃 만루의 풀카운트 상황에서 친 공이 파울 홈런이었어요. 아쉬웠죠. 결국 유격수 직선타로 이닝이 끝났고, 당시 슬럼프였던 저는 ‘그래 내가 그렇지 뭐’하고 낙담을 했어요. 그리고 3회에 다시 만루의 기회가 왔는데 그땐 그냥 외야플라이라도 하나 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때 투수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여서 결정구가 변화구일거라고 예상을 하고 기다렸는데 3번 연속 직구를 던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엔 변화구겠지’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투수가 고개를 가로젓더라고요. 순간 직구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직구 타이밍에 맞춰서 방망이를 돌렸는데 그게 넘어갔어요. 슬럼프도 탈출하고 자신감도 붙고, 경기도 뒤집었고 정말 기분 좋았던 홈런이었어요.
김: 저는 대구고 1학년 때 경북고를 상대로 첫 등판했던 전국체전 예선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사실 저도 경북고를 가고 싶었거든요. 경북고 감독님이 저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속상했었어요. 그래서 경북고랑 경기할 때만큼은 내 실력을 최대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정말 이 악물고 경기에 임했어요. 일부러 경북고와 붙는 경기는 제가 다 등판했고요. 전국체전 예선전은 제가 등판한 첫 경기였는데 8회까지 퍼펙트게임을 했어요. 제대로 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정말 무섭게 던졌던 것 같아요. 9회에 마운드에 오르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근데 첫 타자에게 볼을 3개를 했어요. 반드시 퍼펙트게임을 해야겠다는 욕심에 중앙으로 던진 공이 안타를 맞았죠. 경기가 끝나고 퍼펙트 게임이 될 수 있었는데 아쉽지 않았냐는 질문에 "관심 없었어요"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정말 욕심이 많이 났었어요. (웃음)
임: 좋았던 것 보단 아쉬웠던 경기인데요, 대학교 3학년 때 춘계리그 결승전에서 동의대와 했던 경기요. 3:0으로 이기고 있다가 마지막에 따라 잡히고 끝내기 안타로 경기에 졌거든요. 그 이후로 공을 잘 못 던지겠더라고요.
(Q. 경기 후 아쉬운 마음에 마운드에 누웠었던 경기가 지금 말하시는 그 경기죠?)
네 맞아요. 춘계리그에 이기면 1년 동안 좋은 분위기가 유지되면서 야구를 할 수 있어요. 근데 1학년 춘계리그 결승에서 동의대한테 졌고, 2학년 때는 원광대한테 지고, 남다른 각오로 3학년 때 다시 동의대를 상대했는데 8회에 3실점하고 끝내기 역전으로 져버리니까 다음 대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결국 그 해를 다 망쳐버렸어요. 제가 등판하지 않은 대회는 또 우승을 2번이나 했거든요. 저한텐 어떻게 보면 징크스가 되어버린 경기죠.
Q. 스스로에 대한 아쉬운 점을 알고, 문제를 알면 그것들을 고치기 위해 더 노력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해요, 구본욱 선수는 4학년이 되면서 눈에 띄게 실책이 많아졌어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어떻게 보완해가고 있는지 궁금해요.
구: 지금 군산상고에 계시는 석수철 감독님이 저희 학교에 코치님으로 계실 때엔 수비 훈련을 거의 70~80%에 비중을 두면서 훈련을 했어요. 그런데 4학년 때 새로 오신 코치님은 우리가 4학년이니 어느 정도는 수비에 안정감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셨는지 타격 훈련을 더 많이 시키셨어요. 저 역시 3학년 때까지 실책이 별로 없었으니 타격을 더 보완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요. 근데 그게 잘못되었던 것 같아요. 4학년 춘계리그 예선전 때 고려대와의 경기에서 1회 시작하자마자 실책을 했어요. 그렇게 한 시즌을 보내니까 수비연습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수비연습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Q. 김건우 선수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탈고교급’ 선수였는데 막상 고학년이 될수록 부진해졌어요. 결국 ‘대구고 에이스’ 자리를 지금 삼성 라이온즈에 있는 정인욱 선수에게 넘겨주게 되었고요. 아쉬움이 클 것 같은데, 당시에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김: (정)인욱이가 에이스가 된 게 아쉽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 그땐 저 자신에게 많이 아쉬웠어요. 정말 싫었던 건 제가 야구를 못하니까 부모님 어깨가 축 처져계신 모습을 보는 거였어요. 그 모습을 보면 지금까지 절 계속 뒷바라지해주신 게 너무 죄송해서 쉬지도 않고 공을 더 던졌어요.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걸 몰랐던 거죠. 야구도 안되고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 몰래 정말 많이 울었어요.
Q. 임정호 선수는 대학교 2학년 때 방어율이 1.77이었어요. 3학년 때는 3.03, 4학년은 2.49의 방어율로 시즌을 마쳤는데, 좋은 성적임에는 틀림 없지만 기량이 줄어든 것 같은 아쉬움이 따라오기도 해요.
임: 2학년 때는 그냥 다 좋았어요. 아무 생각 안하고 던져도 잘 됐거든요. 변화구 던지면 타자들이 스윙하고, 첫 경기를 잘 던지고 나니까 자신감이 붙었어요. 정말 투수는 자신감이 중요한 것 같아요. 3학년 때 춘계리그 결승전에서 무너지면서 4학년까지 그게 쭉 이어진 것 같아요. 프로에 가면 더 힘든 일이 많을 텐데, 마음을 강하게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많이 신경을 쓰고 있어요.
Q. 힘들었던 순간, 처음 야구를 시작했던 초심으로 돌아가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세 선수가 처음 야구를 시작했을 때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구: 저는 어릴 때부터 공을 좋아했어요. 돌 때도 공을 잡았대요. 보통 친구들이 자전거 타고 놀자고 할 때 저는 공 가지고 놀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자전거를 못 타요. (웃음) 축구, 농구, 야구 등 공으로 하는 놀이는 다 하고 놀았는데 그 중에서도 야구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아버지와 야구장도 자주 갔었고요. 어느 날 태권도 가는 길에 우연히 야구부를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봤어요. 태권도 학원도 안가고 포스터에 써있는 전화번호를 공책에 적어서 집으로 뛰어갔죠. 그때 어머니가 "네가 하고 싶다고 하니까 일단 가보기는 하자"라고 하셨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야구만 하게 됐네요. (웃음)
김: 어릴 때 아버지가 사회인야구를 하셨어요. 그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야구하는 걸 보면서 저도 하고 싶어서 “아빠 야구하고 싶어”라고 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였는데, 바로 다음날 야구하게 해주시더라고요. 나중에 외삼촌에게 들은 건데, 아버지께서 저 태어나기도 전에 야구 시키겠다고 하셨대요. (웃음)
임: 저도 아버지가 태어날 때부터 야구를 시키려고 하셨대요. 아버지가 휘문고등학교를 나오셨는데 그래서 야구를 좋아하셨나 봐요. 아들을 낳으면 왼손 투수로 키우고 싶다고 하셨대요. 그래서 저를 어릴 때부터 왼손잡이로 키우셨고, 야구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너도 야구 해볼래?”라는 말을 자주하셨어요. 저는 별로 내키지 않아서 안한다고 했는데 계속 아버지가 권유하시니까 한번 시작해봤죠. 근데 결국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 (웃음)
Q. 세 선수 모두 10년이 넘는 길었던 아마추어 시절이 이제 끝이 났어요. 이 아마추어 시절의 끝인 대학시절을 보내면서 자신이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구: 경북고 시절에는 방망이는 나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수비가 많이 약해서 프로에는 못 갔죠. 아시다시피 성균관대 야구부 훈련량이 많잖아요. 그래서 고교 시절보다 확실히 수비력이 높아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프로에 와서 보니까 또 아니더라고요. 지금도 한참 부족함을 느끼는데, 만약 제가 고교 때 무리해서 프로에 갔더라면 ‘한 시즌이나 제대로 보낼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대학 4년이 확실히 제 기량을 늘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더 견고한 선수가 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김: 냉정하게 평가하면 고교선수 김건우보다 대학선수 김건우가 더 약하지 않나 생각해요. 고3때 당한 부상으로 대학 4년이라는 시간은 다시 김건우를 다지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포기도 하고 싶었고, 주위 사람들의 위로조차도 짜증이 날만큼 날카로웠던 것도 있어요. 그러다 깨달은 게, 노력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안될 거라는 생각이었어요. 지금은 프로의 좋은 코치님들 밑에서 잘 배우고 있어서 좋아요. 저에게는 고교, 대학, 프로 모든 게 성장의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임: 솔직히 저는 신일고 시절에 야구선수도 아니었어요. (웃음) 제가 생각해도 공도 못 던지고 제대로 된 게 없었거든요. 드래프트 날에도 당연히 그냥 집에서 쉬고 있었어요. 그러다 기회를 받아서 성균관대에 진학을 했고, 2학년 때 새로 부임하신 이광우 감독님의 지도가 저에게 잘 맞아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의 저를 아는 애들은 다 알아요. 제가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말이에요. 대학교가 제 야구인생을 다 만들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Q. 이제는 당당한 NC 다이노스의 ‘아기공룡’들이 되었어요. 프로에 합류해보니 어떤가요? 특히 ‘살인적인’ 훈련을 했던 성균관대 선수들이 다이노스의 훈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한데요.
구: 저희 학교가 대학팀 치고 훈련이 많은 거지 절대적인 기준으로 많은 건 아니잖아요. 프로 오니까 못해도 대학 시절만큼은 훈련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사회 생활을 시작한 거잖아요. 그리고 제일 막내로 시작하는 거고요. 훈련은 잘 적응하고 있고, 단지 사회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좀 있을 뿐이에요.
김: 연습량이 많긴 하지만 프로선수라면 당연히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까 힘들다, 어떻다 그런 불만은 안 생겨요.
임: 아마추어는 환경이 열악하잖아요. 투수가 야수들 배팅 연습을 돕기 위해 공 던져주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는데, 프로는 그런 게 없으니 좀 더 훈련을 많이 할 수 있고, 체계적이라 훈련량은 많아져도 몸이 느끼는 부담감은 덜 한 것 같아요.
Q. 세 선수가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때문에, 어렵게 느끼는 팬들이 많을 것 같아요. 이 인터뷰를 보신 분들이라면 ‘아, 성균관대 삼총사 착하고 재미있는 선수들이구나.’ 하고 아시겠지만요. (웃음) 끝으로 세 선수의 학창시절 별명을 공개하면서 좀 더 친근한 이미지로의 변신 어떨까요?
임: 그럼 별명은 서로 적어주는 게 어때요? (웃음)
임정호 선수의 적극적인 태도 덕분에 무사히 별명을 폭로(?)하며 세 선수와의 인터뷰를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은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시행착오가 있다. 시행착오는 많을수록 성공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김건우 선수의 길었던 재활 시간도, 구본욱 선수의 힘들었던 대학생활도, 임정호 선수의 말 못할 징크스와 오해들까지, 이 모든 일이 세 선수가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한 시행착오가 아니었을까요?
지금 우리 다이노스는 ‘우리팀’이 되기 위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더 멋진 팀이 되기 위한 시행착오를 함께 겪으며 ‘우리팀’에게 보내주었던 창원시민분들의 뜨거운 응원과 사랑을 우리팀의 미래인 신인선수들에게도 아낌없이 보내주시기를 기대하며, 성균관대 삼총사의 별명 사진과 함께 인터뷰를 마칩니다. 아, 별명을 들고 있는 사진 속 임정호 선수는 환하게 웃고 있는 거라고 하네요. (웃음)
취재: NC 다이노스 명예기자단 권수정(ksj1390@nate.com)
글: NC 다이노스 명예기자단 권수정, 김호지(hoji0602@naver.com)
NC 사진: NC 다이노스 명예기자단 박재호(ncfan@naver.com)
인터뷰 사진 도움주신 분: 고한나(ing100603@nate.com)